“진작 배우지 그랬어?”
- Brian Lee

- Aug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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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ug 23, 2023

코칭을 배우면서 얼마 안되어서 아내가 한 말이다. 진심을 담은 장난기 섞인 투정이자 최고의 인정이다. 물론 아내는 지금도 “당신 코치 맞아?” “코치가 그래도 돼?”라고 짖궂게 말한다. 코칭에 관한 책 한 권 읽지도 않고 수업도 듣지 않은 여인이지만 용케도 내가 코치의 역량과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지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보유하고 계신 분이다. 코칭을 배우면서 처음에는 가족을 상대로 배운 것을 활용해 보려고 했지만 금방 깨달았다. 그나마 있는 나의 자존감을 지키려면 가족과는 건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을.
코칭을 배우면서 가장 큰 수혜자는 내 자신이다.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무엇부터 언급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공감(empathy)이란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였다. 코칭을 배우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내가 공감을 잘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아내는 수십 년 동안 나에게 다양한 방면에서 공감을 요청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늘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실패를 되풀이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라는 것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답을 몰라서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아요?”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니었어?”
“그냥 들어주면 안 되나요?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왜? 나는 아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다. 해결을 해주고 인정받고 싶었다. 솔직히 아내가 힘들어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나는 해결을 해주는 것이 공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칭을 배우면서 적극적인 경청을 하면서 조금씩 내 아내의 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화의 맥락과 의도를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흑기사가 필요한 연약한 공주가 아니었다. 어떤 힘든 상황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 할 때 해결책을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만 해결책이란 뾰죽한 창을 들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모든 사람은 창조주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기에 창의력과 자원이 풍부하고 더 나아가서 온전함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한다. 상대방이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듣기 시작하니 대화에서 문제가 주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굳이 내가 코치의 역할을 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질문은 당연히 문제 그리고 그것에 따른 해결책이 아니라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대상에게 조명된 호기심으로 바뀐다.
“힘들었겠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예의를 갖출 수 있었어?”
진심어린 호기심이다.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에너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까 고민하던 나의 둔탁한 뇌가 상대방을 관찰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전에도 보였겠지만 더 ‘시급한’ 문제 해결 때문에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도 더 풍부해지는 것을 느낀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대화의 주인공의 입장을 상상해 본다. 점점 조명은 상대에게 맞춰지고 상대는 나의 관심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문제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당황 했겠네.”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대화에서 상대방은 강요를 당하는 느낌을 받고 거부감도 자연스레 생긴다. 그러다보니 문제에 포커스를 맞춘 대화는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구겨 넣는 듯 대화가 어색하다. 그러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면 대화가 잘 풀린다. 거기다가 상대의 기분을 읽어주고 입장에 공감을 하다보면 긍정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격한 감정이 수그러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뭉쳤던 근육이 풀린 느낌이다. 유연한 대화는 생각의 폭을 넓힌다. 이전처럼 해결책에 집중하다보면 십중팔구 사람을 놓치는데 사람에게 집중하니 해결책은 저절로 따라온다.
“나 코칭 하려는 거야? 하지마!”
사실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코치로서 내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다. 나의 에고ego가 강하게 들어난다든지 내가 대화의 방향을 정하고 슬슬 끌어당길 때다. 고객은 어김없이 느낀다. 거부감으로 마음의 빗장을 닫는다. 그러나 코칭적 대화가 잘 되었을 때에는 아내도 뭐라고 안 한다.
“당신 많이 달라졌어. 고마워.”
“...”
코칭을 하면서 이전보다 다르게 사람들의 마음이 들려온다. 나름 언어에 자신이 있었고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코칭을 배우면서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깨닫게 되었다.
14살까지밖에 한국에 살지 않아서 일까? 교과서를 통해서 영어를 배워서일까? 아니면 천성일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액면 그대로가 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칭을 배우면서 적극적인 경청을 하면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희망, 두려움, 불안함, 외로움이 들린다. 사람들의 마음이 들린다고 할까?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지금 이미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듣는다고 자신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전에 비해서 내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더 잘 들린다는 것뿐이다.
진작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가장 많이 후회하는 사람은 내 아내보다 내 자신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정말 감사한 하루를 살고 있다. 바라기는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코칭적 대화를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진작 배우지 그랬어?”
늦게 배운 것에 대한 책망이 아니다.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나를 인정해 주는 말이다. 물론 과거에 해결사로 자주 등장해서 망친 대화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문제가 아닌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남편에 대한 따듯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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