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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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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약 20분 거리였다. 밥 뷰포드와 로이드 리이브가 시작한 하프타임 프로그램 참석차 미국에 자주 갈 때였다. 하프타임의 본부가 있는 달라스는 인천에서 하루에 한 번 직항이 있다. 평소에 선호하는 항공사는 로스앤젤리스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야 하고 가격도 훨씬 비쌌다. 그냥 하루를 공항 근처 호텔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고, 마침 상담 수업도 들어야 했다. 귀국하는 날 아침, 호텔 셔틀버스는 이미 만석이었고 운전수 옆자리만 비어있었다.

“여기 앉아도 되나요?”


“그럼요. 어느 항공사죠?”


“아메리컨입니다. 국제선이요.”


“넵. 알겠습니다. 시트벨트 하세요.”


호텔 셔틀버스 운전사들의 삶은 고달프다. 덜덜 거리는 디젤 엔진 소음과 함께 셔틀 버스는 덜컹 거린다. 덕분에 여행자들은 고된 여행길에 그나마 안심하고 잠깐 마음의 쉼도 청할 수 있다. 대부분 운전사들을 격려의 말에 힘을 얻는 것 같아서 몇 마디 안 나눌지라도 그들의 수고를 인정하는 멘트를 준다.

“고마워요. 아침 일찍부터 수고가 많으세요.”

“아.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곧 퇴근하네요.”


이분은 아침인데 퇴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대화를 끊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귀찮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 나의 호기심을 따라 자연스레 질문을 한다.


“달라스에 오래 사셨어요? 저는 몇 번째 오는데 생각보다 달라스가 호수도 많고 나무도 많아서 놀랐어요.”


“아. 그 호수들, 다 인공이긴해요. 달라스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많이 개발되고 있죠. 테슬라도 여기 있고. 저와 제 아내는 볼티모어에서 이사왔어요.”


결혼하고 달라스로 이사를 왔다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달라스 좋으세요?”


“저는 좋아요. 직장 때문에 왔는데 살아보니까 동부보다 좋아요. 그런데 제 아내는 별로인 것 같아요.”


“오우?”


좋은 코치는 좋은 고객을 만날 때 더 빛을 발하는데 이런 훌륭한 “고객”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다니! 자신은 달라스로 이사 온 것을 좋게 생각하는데 아내는 별로인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분은 이야기보따리를 잘 푸는 분이시다. 그래서 “오우?” 한 마디로 충분하다.

“이사 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볼티모어에 살 때보다 체중도 좀 늘었는데 그것 때문에도 힘들어 하네요.”

“체중... 저도 제 의사가 저보고 살 빼라고 매번 독촉인데. 에휴... 살 빼느라 고생하느니 아예 의사를 바꿀까 봐요. 하하하.”


공감을 하는 대화에서 코치가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자칫하면 대화에서의 조명이 고객이 아니라 코치에게 옮겨갈 수 있다. 그리고 유우머는 자칫 분위기가 뻘쭘할 수 있는데 다행히 셔틀버스 운전사는 잘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요즘 고민거리였던 것 같다. 계속 아내 이야기를 한다. 잘 들어줘야지.


“제가 보기에는 별로 살이 찌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제 아내는 자신의 매력이 없어졌다고 우울해 하는 것 같아요.”


“우울하다고 말씀하세요?”


이분의 신념은 어디에서 올까?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했다.


“딱히 표현은 안 하는데요. 보면 알죠. 이전에 비해서 덜 행복해 보여요.”


“언제부터일까요? 이전에 비해서라고 하셔서.”


“달라스 오고 나서요.”

“달라스 이전과 이후...”


“달라스 오고 나서 제가 수입도 더 괜찮아지고. 생활환경도 더 좋아졌는데 아내가 우울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정말 우울한 것일까? 달라스로 이사온 후 이분 말씀대로라면 수입도 더 괜찮아지고 생활환경도 더 좋아졌다는데 아내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피곤한 탓일까? 나도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약간은 고객에 집중하던 것에서 고객의 문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달라스 공항 표지판이 보인다. 운전수는 차선을 바꾸면서 사각지대도 확인한다.


“달라스가 새로운 도시라서일까요?”


“네?”


“아. 아내분이 달라스로 이사 오시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셨다고 하셔서...”


“아. 그때는 결혼 초기였는데. 월급도 많지 않았지만 뭐. 신혼이잖아요.”


이분이 월급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그렇다면? 달라스로 이사온 이유가 직장이라고 했고 이분은 이제 퇴근을 한다고 했다. 밤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신혼은 뭘 해도 좋죠. 월급이 모자라도. 서로 쳐다만 봐도 배부르죠? ㅎㅎㅎ”

“ㅎㅎㅎ. 그렇죠. 지금도 좋아요. 그런데 저와 일하는 스케줄이 좀 다르다 보니 이전 같지 않아요.”


코칭의 철학은 고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객은 답을 이미 갖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침묵의 시간도 때로는 고객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더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한 시간이다. 코칭은 파워풀한 질문이라고 하지만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

“이전에 신혼 때에 행복한 기억 하나만 나눠주실래요?”


“극장에 가서 영화 보면서 팝콘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영화와 팝콘! 버터 많이 넣어서?”

“당연하죠. 이전에는 아내와 영화 보러 많이 갔었어요.”

이제 잠시 후 나는 내려야 하고 이분과는 아마 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이분은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 저는 내려야 하는데요. 혹시 오늘 깨달은 것 있으실까요?”

약간의 침묵이 또 흐른다. 아니면 내가 긴장해서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했나?

“달라스에 와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밤에 일해야 수당도 더 받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내와의 시간이 많이 없어졌네요.”

추측하건데 그의 아내는 남편의 관심이 줄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더 이상 시간은 없었다. 사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어쩌면 나는 오히려 대화를 유도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었겠다. 코치로서 고객에게 집중하는 것은 정말 생각보다 어렵다. 고객이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코치의 에고가 슬그머니 발언권을 달라고 한다. 내 안에 있는 해결사를 잘 구슬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 다시 고객에게 집중을 하자.

그의 에너지는 다운되는 듯 했고. 시간은 없고. 그냥 의식 확장까지 한 것으로 만족하고 말까? 그런데 코칭을 하다보면 정말 하늘이 돕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전수는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그동안 돈 조금 더 버는 재미에 소홀했네... 아내에게.”


나의 직관이 맞기는 했다. 달라스로 이사 오면서 아마 이분도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돈을 벌었을 것이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경제적 안정은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볼티모어보다 더 나은 삶을 실제로 살면서 더 좋은 생활환경과 더 두둑해진 지갑으로 자신을 위로했을 것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그의 아내는 이사하면서 체중도 늘었고 무엇보다 남편과 보내는 시간이 이전보다 준 것에 대하여 여자로서 매력이 줄었기 때문일까 자문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간근무를 선택하나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 아내는 우울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직관이 코칭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코치가 직관을 나누면서 조명이 코치에게로 가고 고객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직관을 잘못 사용하면 마치 고객은 멘토에게 배우듯 수평적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시간이 없었기에 천만 다행이다. 여행 중 나의 컨디션이 나의 집중력을 떨구었고 그렇게 하늘이 도와서 생긴 침묵의 시간에 나의 ‘고객’은 독백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인 실행이다.

“그러면 뭘 해보고 싶으세요?”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운전수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화는 영화의 장면처럼 기억이 난다. 덜컹거리는 셔틀버스와 디젤의 특유한 냄새가 떠오른다, 여행 가방들이 부딪히며 삐걱거리던 공간에서 그와 나눈 20분의 대화는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그는 야간 근무를 계속 할까? 영화를 보러 갔을까? 그나저나 나도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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