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의 대화는 깊이가 있습니다."
- Brian Lee

- Aug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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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의 대화는 깊이가 있습니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감사한 마음을 주고받은 대화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택시 기사님도 그리고 나도 풍성함을 갖고 헤어진 좋은 만남이었다. 코칭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가산디지털역으로 가시는 것 맞죠?”
“네. 감사합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면 참 편리하다. 호출에서 결재까지 스마트폰 화면으로 다 해결이 된다. 택시 기사님 사진까지 미리 확인하고 탑승해서 나름 안전한 것 같다.
“사무실 가시나 봐요. 일요일인데.”
이전 교회를 사임하고 한동안 차가 없이 대중교통만 사용할 때다. 원래는 주일 아침에도 대중교통을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주일 아침만은 택시를 타기 시작했다. 한번 익숙해지니 필수 조건이 되었다.
“아. 사무실이 거기 있기는 한데요. 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러 가요.”
굳이 나의 종교 활동을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감사하게도 그는 자신은 신앙은 없는데 그의 아내가 교회에 열심을 내어서 같이 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연스레 칭찬과 격려를 한다.
“사모님은 좋으시겠어요. 선생님 같은 분을 남편으로 두셔서.”
코칭을 배우면서 처음에는 어색하던 칭찬과 인정 그리고 격려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전에도 다른 분들에 대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왠지 표현하는 것은 어색했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코칭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면서 다른 분들에 대한 관찰의 폭도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이전보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 더 잘 보인다. 아마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중립적 경청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하면서 생긴 자연스런 결과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칭찬하는 것이 이전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했다던가. 기사님도 좋아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아내도 열심이지만 친구 놈 등쌀에 마지못해 예배는 드리러 갑니다. 허허허.”
백미러로 나의 반응이라도 보시는 듯 나와 눈도 맞추고 대답도 참 잘 해주신다. 사무실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약 20분 정도. 다음 대화는 어떻게 펼쳐질까?
코칭은 고객과의 춤이라고 배웠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경우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로서의 수직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코칭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칭의 관계를 함께 추는 춤으로 표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코칭은 수평적 관계이지만 전문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코치는 코칭 프로세스의 전문가이고 고객은 자신의 삶의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있다. 코치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든지 아니면 고객이 자신의 삶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면 좋은 코칭을 기대하기 어렵다. 코치와 고객이 본연의 역할을 잘 하면 코칭은 고객과 함께 추는 춤을 넘어설 수 있다. 존경하는 선배 코치가 “코치가 고객과 함께 춤을 추는 것도 코치가 너무 들어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동의한다. 바람직한 코칭은 고객이 춤을 자유롭게 추고 코치는 고객에게 조명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분에게 조명이 가도록 해드려야지”라는 생각으로 대화를 계속 했다.
“친구 분이 참 좋으신 것 같아요.”
나의 “고객”이 친구 이야기를 꺼냈고. 그 관계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한 마디에 친구 자랑으로 이분의 에너지가 급상승한다. 친구 부부와 몇 십 년을 친하게 지내오는데 두 부부는 자주 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얼마 전에 강원도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열심히 한다. 디테일이 많다. 요점만 정리해서 중요한 단어 몇 가지로 다시 질문을 한다. 미러링도 하고 백트래킹도 하면서 대화는 흘러간다. 그러면서 호기심이 생긴다. 과연 이분은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하다.
“좋은 아내 분 그리고 친구 분과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관계를 유지해 오신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주일 아침 택시 안에서 오고가는 대화가 참 아름다운 색채를 띠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사님은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를 하신다. 정직, 근면, 성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가족 그리고 친구가 소중한 분이시다.
“여행을 즐기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그 질문에 “그럼요” 말씀 하시며 또 여행 이야기를 하신다. 아. 이번에는 방콕 다녀온 이야기다. 밤에 친구와 숙소에서 둘 만 나가서 단체 프로그램에 없던 재래시장에서 야식을 한 말씀을 하신다.
아! 이게 아닌데. 여행 보다는 이분에게 조명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의 초점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랑스러운 친구가 다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살리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전도다. 그러나 내가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전도다. 아내와 친구가 뿌려놓은 씨앗에 내가 물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코치가 여기서도 코치의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agenda를 가지고 대화를 이끌면 안 된다는 생각도 스쳐간다. 전도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토닥이며 다시 기사님에게 집중한다. 이 분에 대한 호기심, 편견 없는 경청, 열린 마음으로 주일 아침에 적어도 20분은 한 ‘배’를 탄 동반자로서 좋은 대화를 함께 만드는 목표로 돌아간다.
“아내 분이 선생님과 꼭 가고 싶은 여행이 있으신 것 같아요. 친구 부부와 함께요.”
“네?”
질문이 너무 뜬금없었나? 코치의 의도가 개입을 해서 대화의 흐름이 끊겼을까? 본인은 아내가 그리고 친구가 졸라서 예배 참석 정도는 한다고 말문을 여신 분이라서 신앙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분이 좋아하는 여행 그리고 아내와 친구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내 분은 선생님과 하나님 나라를 꼭 같이 가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아...”
이제부터 대화가 어떻게 튈지 모르지만 택시에 타면서 지금까지 나름 예의를 갖춘 대화를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라포가 형성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기사님은 불쾌하지 않은 듯 대답하신다. 다만 목소리에 힘은 약간 빠져있다.
“언젠가는 저도 잘 믿으려고 합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이분에게 격려가 될까? 인정과 격려 그리고 지지를 해드리고 싶었다.
“이미 잘 믿고 계신 것 같아요. 아내 분과 함께 예배도 드리시고. 그런데요 하나만 여쭤봐도 좋을까요?”
“그럼요.”
이번에는 의식 확장이다.
“여행 가시기 전에 어떻게 준비 하시나요?”
아직은 예배를 통해서 특별한 감동은 없으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예배에 참석하고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에 대하여 나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만일 선생님이 우연히 좋은 곳을 혼자 발견하시면 아내 분을 데리고 함께 가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그럼요.”
“아마 아내분과 친구분도 하나님 나라가 좋아서 선생님과 함께 가고 싶어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호가 바뀌고 이제 남은 것은 유턴이면 목적지 도착이다.
“여기 내려드리면 될까요? 오늘 좋은 대화 감사합니다.”
“어떠셨어요? 괜찮으셨어요?”
예민할 수 있는 신앙 이야기를 해서 약간 걱정은 되었으나 라포 형성도 좋았고 신뢰를 주고받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질문을 하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기사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의 욕구도 있었다. 아 언제나 되면 이런 인정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까?
“선생님과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깊이가 있네요.”
이전에 택시를 타면 대부분 정치, 날씨, 예능 이야기를 나눴는데 요즘은 기사님이 주인공이 되는 대화를 한다. 의식이 확장되고, 더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자신들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도 경험한다. 한 분은 손주들을 자주 보고 싶은데 영상통화 할 때마다 만 원씩 준다고 해도 연락을 안 한다고 하시면서 아쉬운 마음을 말씀하신다. 또 다른 분은 장성한 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또 손을 내민다며 한숨도 내쉰다.
택시를 타면 승객이 목적지를 정하지만 코칭적 대화에서는 코치가 아닌 ‘고객’이 결정하는 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코치와의 대화는 의식 확장이 일어난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깊은 대화를 통해 우리는 더욱 가치 있는 삶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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