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경제 시리즈 1편: 돈이란 무엇인가? 가치와 신뢰를 다시 묻다.
- Brian Lee

- May 11
- 9 min read
돈이란 무엇인가: 가치와 신뢰를 다시 묻다
블록체인 경제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우리가 비트코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CBDC, ETF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돈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단순한 숫자나 종이, 혹은 은행 계좌 안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와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 속 사람의 실체를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
예수님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우리의 속마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는지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돈, 재물, 물질, 그리고 보물을 모두 "돈"이라고 표현합니다.
자. "돈이란 무엇일까요?" 돈은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도구"죠. 물물교환할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또 다른 재물입니다. 이렇게 돈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외적 도구이지만, 결코 우리 속마음과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외적 도구로 사용되는 돈은 우리 속사람이 마음으로 무엇을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보여줍니다. 즉, 돈은 우리가 무엇과 어떤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돈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돈이란 우리가 어떤 것들이 가치(worth)가 있다고 믿는지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중간신념이 될 수 있고 더 심각하게는 우리의 절대신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말하면 돈은 보통 세 가지 기능을 합니다(안갑성, 2026).
첫째, 돈은 교환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 돈을 통해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입니다.
둘째,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입니다. 오늘 일해서 얻은 가치를 내일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합니다.
셋째, 돈은 계산의 단위입니다. 우리는 돈을 기준으로 물건의 가격과 노동의 대가를 비교합니다.
그러나 돈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돈은 신뢰의 체계입니다.
우리가 종이돈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종이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행 계좌의 숫자를 신뢰하는 이유도 숫자 자체가 밥을 먹여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돈을 다른 사람도 받아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제도와 국가와 금융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돈은 언제나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 경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은 “우리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은행을 신뢰할 것인가?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중앙기관을 신뢰할 것인가? 코드와 네트워크를 신뢰할 것인가? 시장 참여자들의 합의를 신뢰할 것인가?
그러나 크리스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궁극적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크리스천이라면 꼭 대답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라고 말씀하여 지혜를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명철, 우리의 판단, 우리의 투자 감각, 우리의 재정 계획이 궁극적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도 다루면 좋겠지만 우선 여기서는 이 정도만 다룹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고 또 지혜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어리석다고 고백하며 온전한 지혜 그 자체를 따르려는 겸허한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천은 금융 변화에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금융 변화를 구세주인양 붙들어서도 안 됩니다. 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망상은 비전이 아닙니다. 방법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지혜와는 아주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과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
크리스천은 돈과 가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돈과 가치를 자주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의 연봉이 그 사람의 가치를 말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얼마를 투자했고 얼마를 벌었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자, 돈은 가치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하지만 가치 자체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세상을 향해 한 가지 분명한 쓴소리를 해야 합니다.
물론 돈, 학위, 직장, 자산은 어떤 면에서 한 사람의 노력, 기회, 책임, 성실함, 혹은 사회적 위치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도구일 수는 있지만, 가치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가치를 훨씬 더 근본적인 곳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
인간의 가치는 수능 결과나 경제 시장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는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존엄합니다.
분명히 돈의 역할은 필요합니다. 돈은 일상생활에 유익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에 크리스천에게 돈이란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돈을 비롯해 학위나 재물, 성과나 성공으로 인간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참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입니다. 제가 늘 번영신학은 복음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C. S. Lewis는 『The Weight of Glory』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re are no ordinary people. You have never talked to a mere mortal.”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죽음이라는 숙명을 넘지 못하는 단순한 존재와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영원과 관련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거듭나서 영생을 누리든지 아니면 영벌에 거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가치가 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난과 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를 다시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학위가 있고 없고가 어떻게 문제가 될까요? 과연 어떤 직장이 본질적으로 "좋은" 직장이 될까요? 이런 면들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치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겸허함 없이 돈을 이해하려는 것은 부유무와 무관하게 아주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고민하여 소유해야 하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이자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자신을 자산 규모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어떤 직함으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학벌과 연봉으로 등급화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가치를 시장 가격처럼 계산하지 마십시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있고,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의료 서비스는 살 수 있지만 생명의 주권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명품은 살 수 있지만 존엄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살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중심이 그 안에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가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가치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산, 노동의 열매, 사업의 번영, 지혜로운 저축은 모두 하나님의 일반은총 안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할 능력을 주시고, 땅을 다스리며, 생산하고, 관리하고, 나누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17–18)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재물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재물을 얻은 후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이라고 말하는 마음입니다.
돈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우상이 됩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이 유혹이 더 미묘해집니다. 은행 계좌의 숫자, 투자 앱의 그래프, 코인의 가격 변동, 포트폴리오의 성장률이 우리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돈이 우리의 평안을 조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돈에게 사용당해서는 안 됩니다. 돈은 마음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돈은 우리 속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은 "안전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은 "인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은 "자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은 불안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마취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은 자신의 미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물”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주인처럼 행동하는 중력과 힘을 뜻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속삭였듯이 오늘도 어둠은 우리 품 안에서 말합니다.
더 모아야 안전하다. 더 가져야 인정받는다. 더 벌어야 네가 누구인지 증명된다. 잃으면 너는 끝이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음성을 들려줍니다.
너는 돈으로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다. 너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존재다.
창조주 하나님 외에 그 무엇도 우리의 존재 가치를 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모습을 가질지라도 경제 시장이 우리의 정체성을 정하지 않습니다. 투자 성공이 우리의 의로움이 아닙니다. 투자 실패가 우리의 존재 가치를 무너뜨리지도 않습니다.
크리스천은 청지기입니다. 금은보화의 주인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어떤 경제 체제든지 무관하게 돈은 청지기직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24:1)
이 말씀은 경제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 수입, 내 지출, 내 저축, 내 투자, 내 집, 내 은퇴 계획, 내 사업, 내 재능, 내 시간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주인처럼 살지만, 실제로는 청지기, 즉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재정 질문은 단순히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어떻게 신실하게 관리할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돌보아야 합니다. 빚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당연히 허비나 낭비를 피해야 합니다. 물론 정직하게 벌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소외되기 쉬운 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섬겨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과 내일을 신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늘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이 세상의 금융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직의 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는 탐욕을 포장한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고, 저축은 솔직하게 시인하기에는 불편한 우리 속사람의 불신앙을 포장한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과 관련된 우리 속사람의 가치관이 어떻게 정리되었는가에 따라 소비는 감사의 표현이 될 수도 있고, 공허함을 채우려는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에 대한 성경적 균형
복음을 따르기 시작하면 돈에 대해 두 가지 극단을 피하게 됩니다,
첫 번째 극단은 돈을 더러운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돈과 경제활동 자체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동, 생산, 지혜로운 관리, 상업, 재산을 모두 부정하지 않습니다. 잠언은 부지런함과 지혜로운 관리의 가치를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두 번째 극단은 돈을 구원처럼 보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돈만 있으면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
성경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문제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향해야 할 사랑과 신뢰와 소망이 돈을 향할 때, 돈은 위험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균형은 이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돈은 대부분 필요합니다. 그렇게 돈은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돈은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것입니다. 절대로 돈은 "신"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될 수 없고, 우리의 권력이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경제 시대의 첫 질문
앞으로 우리는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이더리움은 왜 다른지, XRP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스테이블코인과 CBDC가 왜 중요한지, ETF와 토큰화가 금융 질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뤄야 할 것은 새로운 정보나 기술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나는 돈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돈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가?
나는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가?
나는 금융 변화 앞에서 지혜롭게 배우고 있는가, 아니면 조급함과 탐욕에 끌려가고 있는가?
나는 돈을 통해 하나님을 더 신실하게 섬기고자 하는가, 아니면 돈을 통해 하나님 없이도 안전해지고 싶은가?
나는 사람의 가치를 하나님의 형상에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성취와 숫자로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맹종과 순종은 다릅니다. 진리와 지혜의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가 무조건 생각 없이 따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동시에 정보와 지식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지만 정보와 지식은 지혜로움이 아닙니다.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정보와 지식은 풍성해도 지혜는 없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신지 차근차근 알아가는 "두려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
이 말씀은 오늘의 경제 환경에서도 깊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무지함은 순전함이 아닙니다. 당연히 탐욕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욕심은 좋은 꿈도 아니요, 당연히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 속사람에게 남은 죄악성을 깨달으며, 이 세상의 어둠의 전략을 알아가며, 우리가 이 세상에 거하고는 있으나 속하지는 않았다는 정체성을 말씀을 통해 매일 되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결단성이 있는 행동이지만 조급함에 끌려가는 경솔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와 인도하심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어리석은 에서처럼 경홀이 여겨서도 안 되지만 욕심많은 야곱처럼 탐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돈은 좋은 종이지만 나쁜 주인입니다
돈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 가족을 돌보게 합니다. 선교와 구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우리 이웃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 시대의 풍년과 흉년을 준비하는 데 유용합니다.
그러나 돈은 나쁜 주인입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 그 우상 앞에서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늘 비교당합니다. 그러니 늘 불안합니다. 늘 더 필요합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 사람도 수단이 되고, 하나님도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블록체인 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첫 번째 고백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돈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을 숭배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을 무시하지도 않고, 돈에게 지배당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배우고, 분별하고, 관리하고, 나누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시장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금융 시스템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자산 규모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숨과 맞바꾸셔도 기쁘실 가치가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내가 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감사입니까, 불안입니까, 욕심입니까, 두려움입니까?
나는 사람의 가치를 무엇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나요? 돈, 학위, 직업, 성취, 영향력, 혹은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돈과 자원을 통해, 내가 더 신실한 청지기로 자라 가야 할 한 가지 영역은 무엇입니까?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돈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지도 않게 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돈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에서도 지켜 주시고, 돈을 구원처럼 붙드는 탐욕에서도 지켜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께 속한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의 수입과 지출과 저축과 투자와 나눔 속에서 주님을 인정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람의 가치를 돈과 학위, 직장, 성취로 판단하지 않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가난한 사람을 낮게 보지 않으며, 성공한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도 세상의 숫자로 평가하지 않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변화하는 경제 시대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참된 안전과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ferences: 안갑성. (2026, April 9). 비트코인 실패한 ‘화폐 3대 기능’…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 왕좌 노린다.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tock/120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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