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갈급함에서 배우는 것들
- Brian Lee

- 5월 25일
- 2분 분량
최근 KBS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기사는 수십만 명의 MZ세대가 불교 엑스포에 몰려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태어나 자란 MZ세대가 불교의 무상(無常)을 몸으로 배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은 EDM을 틀고, 젊은이들은 새벽 예불 종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은 MZ세대의 유행일까요?
한국리서치 조사(2025년 12월)에 따르면 18~29세의 불교 호감도는 56.2점으로 1년 사이 5.3점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세대의 개신교 호감도는 30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MZ세대가 지난 몇십 년간 개신교가 지향해 온 가벼운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쉬지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도 같은 진리를 선언합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전도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다고 말한다(전 3:11). MZ세대의 갈망은 이 목적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탈한 교회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한 청년이 말합니다. "불교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강요하지 않아요."
취업난, 주거 불안,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대는 웃는 낯으로 박수 치며 "다 잘될 거야"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진리를 원합니다. 한국 정부가 '고독부'를 신설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책 뉴스가 아닙니다. 나름 세상이 할 수 있는 영적 진단입니다. 이 세대는 침묵을 허락하는 공간을 원하지, "주여 삼창"을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는 존엄한 자유를 원합니다. 만일 MZ 세대가 교회를 등진다면 신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경쾌한 찬양으로 십자가의 무게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수천 년의 탄식을 품고 있습니다. 시편의 과반수는 탄식입니다. 시대를 벗어나 교회는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십자가 안에서 만나진다고. 신앙의 선배들은 침묵을 수련했고,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씨름을 신앙의 본질로 가르쳤습니다. 이 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고요함은 원래 교회가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함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이미 가졌던 유산입니다.
MZ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것들 (무게, 침묵, 절제, 신비, 의미)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연합된 가족이어야 합니다. 고독의 시대에 복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양된 자녀의 정체성과 영원한 소속감입니다. 불교는 자아를 소멸시키라고 하지만 십자가는 자아를 구속합니다. 불교의 침묵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면, 복음은 창조주 앞에 잠잠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구원자가 인간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잠잠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이 세대는 교회가 세속 문화를 흉내 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교회가 담대하게, 오래되고, 신비롭고 거룩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적 대각성은 늘 성경을 일반 성도의 언어로 열어 말씀의 능력이 역사할 때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말씀의 선포가, 트렌드의 모방이 아니라 부패된 세상을 향한 정직함이 모든 세대가 원하는 것입니다.
MZ세대는 개신교의 가벼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개신교가 제시하는 노래와 깊이 없는 설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잘 압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세속화된, 그래서 세상과 다르지 않은,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구호화된 싸구려 종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 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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