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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學院)인가 학원(虐怨)인가



배움의 공간인가, 학대와 원망의 굴레인가



최근 공개된 JTBC 밀착카메라 보도보셨나요? 매일 밤이 되면 대한민국의 유명 학원가 주변은 그야말로 '교통 전쟁터'로 변합니다. 5차선 도로 중 무려 3개 차선을 학원 버스와 학부모들의 차량이 완전히 점령해 버린 비정상적인 풍경,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대한민국 교육의 씁쓸한 현주소입니다.


지자체의 암묵적인 방조와 무법천지가 된 도로 위에서 아이들은 위험하게 차선 사이를 위태롭게 건너며 셔틀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돈은 학원이 벌고, 피해와 위험은 고스란히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떠안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단순한 교통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깊은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學院이 아닌, 虐怨(학대할 학, 원망할 원)이 되어버린 현실

원래 학원이라는 공간은 지식을 배우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學院(배울 학, 집 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열된 입시 제도와 무한 경쟁, 그리고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이 단어는 전혀 다른 서글픈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로 虐怨(학원)입니다.

  • 학대할 학(虐): 청소년기의 자유와 수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을 모두 저당 잡힌 채 밤늦은 시간까지 좁은 강의실과 도로 위의 셔틀버스에 가두어 두는 현실. 어른들의 조급함이 만든 '합법적 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원망할 원(怨): 배움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사회와 어른들, 그리고 친구들을 향한 '원망'과 원한만 쌓여가는 비극을 뜻합니다.


AI 시대, '가장 성능 떨어지는 컴퓨터'를 길러내는 모순

지금의 주입식 교육은 사실상 인간을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로 만드는 과정과 다름없습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가 전 세계의 지식을 몇 초 만에 요약하고 분석해 내는 시대입니다. 교과서를 달달 외워 정답을 골라내는 기계적인 암기력으로 AI와 경쟁하겠다는 것은,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 장인이 되겠다며 밤새 훈련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모함입니다.

미래에 진짜 필요한 것은 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고력(Prompting)'과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이해력'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면 가장 먼저 AI에게 대체될 '단순 암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밤마다 학원 버스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기계와 경쟁하느라 정작 인간만의 무기인 창의성과 비판적 사유를 거세당하는 비극이 매일 밤 학원가에서 반복되는 셈입니다.


'가장 편리한 공정성'이라는 덫

우리가 이 시스템의 폐해를 뼈저리게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저변에는 뿌리 깊은 '사회적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고력과 이해력을 평가하려면 논술이나 토론 같은 정성평가로 전환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늘 "누군가의 주관이나 부모의 배경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결국 한 줄로 깔끔하게 석차를 매길 수 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수능)'이, 가장 비인간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편리하고 공정해 보이는 덫'이 되어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학생의 잠재력을 키우는 교육(Education)이 아닌, 상위권 대학에 보낼 사람만 잘라내는 '필터링(Filtering)' 시스템에 아이들의 청춘과 행복을 갈아 넣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의 움직임, 그러나 본질적인 숙제

다행히 교육계에서도 이 거대한 모순을 깨닫고 변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인구 절벽과 AI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2040년까지 수능을 완전히 폐지하고, 구조를 서술형·논술형 평가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채점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AI 채점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구상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하지만 제도적 변화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 어른들의 인식 전환입니다. "좋은 대학 간판이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용 시장과 사회 구조가 먼저 증명하지 않는 한, 시험 제도가 바뀌어도 학원가는 또 다른 형태의 '족집게 기술'을 개발해 아이들을 옥죄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도덕경에 나오는 노자의 오랜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즉 "배움을 구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진리)를 구하는 자는 날마다 덜어낸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오직 '더하기(日益)'만 강요합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더하고, 이력서에 스펙을 더하고, 부모의 마음에는 불안을 더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진짜 본질과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은 오히려 세상의 욕심을 덜어내고, 남들의 시선을 덜어내며, 내 힘으로 미래를 통제하려는 불안을 '덜어내는(日損)' 데 있습니다.

이 '덜어냄의 지혜'는 비단 철학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의 패턴을 거슬러 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영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패턴을 거스르는 믿음의 용기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직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 거대한 경쟁의 굴레 속에서, 과연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서와 로마서(로마서 12:2)를 통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솔직히 우리 역시 이 세상의 패턴에 너무나 깊이 동화되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행복과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말하는 '스펙과 성공'을 은연중에 우상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남들처럼 달리지 않으면 내 아이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세상의 결핍과 두려움의 문법에 갇혀,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주권을 망각하곤 합니다. 그 결과, 믿음의 가정에서조차 아이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빚어가는 영적 성품보다, 좋은 대학 간판을 위한 학업 스케줄이 모든 우선순위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안식일의 평안, 가족 간의 깊은 대화,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성장이 끝없는 학원 보충수업에 밀려날 때, 우리는 입술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삶으로는 "내 아이의 미래는 오직 우리의 노력과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세상의 무자비한 논리를 아이들의 영혼에 주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정말 경종을 울려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의 일주일 시간표가, 부모인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불안이, 그리고 우리가 정의하는 '성공한 인생'의 기준이 이 세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의 야망에 신앙의 언어를 덧칠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 세상의 소모품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 숨 막히는 질주를 멈추어 설 수 있는 영적인 반역과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이 굴레에 갇힌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이 거대한 모순을 이야기하면서도 제 마음 한구석이 내내 무거운 이유가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만약 제가 지금 당장 그 치열한 학원가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부모라면, 저 역시 남들과 다르게 행동할 용기가 있었을지 전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 아이의 미래와 성적이 걸린 현실 앞에서, 혼자만 담대하게 "우리는 이 질주를 멈추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외로운 싸움인지 잘 압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이 숨 막히는 시스템을 단번에 탈출할 멋진 비상구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드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구조적인 덫에 함께 걸려 있는 서글픈 동지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답을 몰라 함께 불안해하는 부모님들의 손을 잡고 이 한 가지만은 꼭 나누고 싶습니다. 결코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죄인처럼 여기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사랑해서,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서 밤낮으로 고민하는 그 마음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당장 이 거대한 학원 버스의 행렬을 멈출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오늘 밤에도 여전히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그 부모의 아파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아이에게는 세상과 다른 공기를 마시게 하는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완벽한 탈출은 못 하더라도,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안아주며 "성적보다 네 존재가 훨씬 소중해"라고 말해주는 작은 숨구멍 하나, 일요일 하루만큼은 온전히 세상 짐을 내려놓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작은 안식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거창한 교육 혁명이 아니라, 이 작은 '틈새'일지도 모릅니다. 그 틈새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장 완벽해지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버텨내고 계신 모든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선행학습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고, 일등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굴레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소리 없이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5차선 도로 한가운데 서서 위험천만하게 차를 타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위태로운 경쟁 사회의 벼랑 끝에 몰린 청소년들의 심리적 상태를 그대로 대변하는 직관적인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교육과 성장은 아이들을 위험한 도로 위로, 가혹한 경쟁 위로 내모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원망(怨)' 대신 스스로 피어나는 '학습(學)'의 즐거움을 채울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어른들과 사회가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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